기부자 인터뷰

view
장혜미 변호사(美 Arnold & Porter 파트너 변호사)

 

아버지의 '한양'을 기억한다

한양의 터 위에서 아버지의 뜻을 기리다

 

20231005_故 장근수 포항공대 명예교수 발전기금 전달식 및 명예의 전당 헌액식, 메모리얼 벤치 제막식_0063.jpg

 

귀한 뜻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는 유산이 있다는 것은 아름답고 고결한 일이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뜻을 아버지의 모교였던 되돌려주기 위해 남겨진 가족들이 한양을 찾았다. 故 장근수 교수의 외동딸, 장혜미 변호사는 아버지의 정신을 한양의 후학들과 함께 하고 싶다며 마음을 전해왔다.

 

장혜미 변호사(美 Arnold & Porter 파트너 변호사)

 

故 장근수 명예교수를 기리며

 

“학구심에 불타는 상이군인에게 등록금 면제를 해 준 한양공대, 이것은 그때의 학장이고 나중에 총장이었던 김연준 이사장님의 "사랑의 실천"의 한 예였다고 본다. 그리고 나의 출발점을 만들어 준 한양공대, 나를 지원해 준 셋째 형인 影(根億)형님, 나를 키워 주신 한양공대 시절의 교수님들에게 대한 감사한 마음이 언제나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 故 장근수 포항공대 명예교수 회고록(1998) 중


故 장근수 포항공대 명예교수(화학공학 53, 이하 장근수 교수)는 1953년 한국전쟁으로 한양대가 부산의 송도에 피난을 떠나 있을 무렵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예술가 형제들 속에서 자란 그는 폐허가 된 조국에 기여하고 가족을 일으킬 수 있는 길을 공학에서 찾았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 한양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화학공학과 실험실 조교 일을 하고 있을 무렵. 스승이자 당시 화학공학과의 주임교수였던 이원근 선생의 추천으로 미국 국비유학생에 선발돼 1958년 미국 Argonne National Laboratory에 설립된 국제원자력학교에 입학했다. 이것은 훗날 그가 화학공학 최고 권위의 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된 계기이자 자양분이 된다.

전쟁의 폐허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하고 새로운 꿈을 심어준 것도, 미국이라는 당시 미지의 땅에서 깊이 있는 학문에 발을 딛게 한 것도. 한 젊은이에게 숨겨진 원석 같은 가능성을 발견한 인연도, 모두 한양에서의 시간이 만들어 낸 일. 훗날 장근수 교수가 회고록을 통해 한양을 향한 특별한 마음을 내비친 것은 그 뿌리 깊은 인연을 짐작하게 한다.

 

 

20231005_故 장근수 포항공대 명예교수 발전기금 전달식 및 명예의 전당 헌액식, 메모리얼 벤치 제막식_0026.jpg

 

 

장근수 교수는 한국 원자로운전면허 제1호 보유자다. 수십 년간 현대 수학의 정수인 혼돈(Chaos)이론을 이용한 화학 공정 자동화 연구 분야에 기여해 온 장근수 교수는 학술 논문과 특허 출원으로 화학 공정 자동화 기술의 이론화와 산업화를 위해 헌신했다. 국내외 주요 원자력 연구소에서 기여하는 한편, 1988년까지 캐나다 워털루 대학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귀국해 포항산업과학기술연구소를 거쳐 포항공대 정교수와 명예교수를 역임한 장근수 교수는 2003년까지 포항공대 상근 부이사장을 수행하는 등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쳐왔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에 정착한 이후로는 한국인 유학생을 돕고, 캐나다 키치너-워털루 지역에 한인 학교를 설립하며 캐나다 한인 교포 사회에 크게 기여한 것은 그의 인품을 가늠하게 하는 면모다. 딸인 장혜미 변호사는 이러한 봉사를 큰 보람으로 여기셨다며 제자들과 이웃을 향한 애정을 대변했다.

“아버지의 장례식과 최근에 진행된 1주기 기념식에서 아버지께서 차세대 한국 과학자들과 그들의 커리어 발전을 위해 멘토링을 하며 많은 영향을 끼치셨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유머와 이해심을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이끄셨으며 일상에서 만나는 인연을 귀하게 여기고 교류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이러한 고인의 노력과 헌신, 후학을 향한 열정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지난 10월 첫 주,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앞에서는 장근수 교수의 발전기금 전달식과 메모리얼 벤치 제막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2022년 작고한 장근수 교수의 부인 장기렴 여사와 외동딸 장혜미 변호사, 그리고 장 변호사의 가족이 함께한 가운데 진행됐다. 1주기를 맞이하며 개척자 정신으로 학문과 산업에 정진하면서도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았던 아버지를 기리고, 후대의 한양인들에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 메모리얼 벤치 기부에 나선 동기가 됐다. 한양에서는 처음 이뤄진 메모리얼 벤치 기부. 교정 한편을 내어 고인의 삶과 뜻을 기리는 의미 있는 행보다. 

장근수 교수 메모리얼 벤치에는 특별한 문구가 새겨졌다. 1965년 노벨물리학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의 어록 중 하나다.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이해 형태는 웃음과 인간적인 연민입니다.’ 위대한 과학 업적을 드러낸 것 외에도 예술 영역에서도 재능이 뛰어나 대중들의 언어로 소통하면서 동시에 삶에 대한 겸손과 유머를 잃지 않았던 파인먼의 삶은 장혜미 변호사가 기억하는 아버지 장근수 교수의 삶과 맞닿아 있다.

“리처드 파인먼의 명언은 아버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포스텍에서 열린 아버지 연례 추모 강연에서도 이 명언을 언급하며 ‘유머와 관용’을 지닌 분으로 기억해 주셨죠. 아버지는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학생들과 동료뿐만 아니라 상점 직원부터 항공기에서 만나는 승무원, 식당 종업원까지 그 어떤 분과도 어울리며 농담하실 줄 아는 분이셨습니다.”

장혜미 변호사는 어떤 장소, 어느 누구를 만나든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아버지를 기억했다.

또한, 장혜미 변호사는 아버지가 젊은 날을 회고하며 피난 시절 한양공대에서 학위 과정을 완료한 것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오셨다고 추억했다. 장근수 교수의 가족들이 한양에 기꺼이 마음과 뜻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에게 한양이 얼마나 각별한 의미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메모리얼 벤치 제막식이 열린 날, 장근수 교수의 가족들은 이러한 고인의 마음을 이어받아 임종을 함께해 준 한양대학교병원에 발전기금을 전달했다.

“한양대학교병원에서의 마지막 날, 김승현 박사님과 의료진들이 친절과 최고의 서비스로 아버지와 저희 가족을 돌봐 주셨습니다. 그날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한양대학교병원에 기부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기실 것으로 믿고, 이것이 곧 아버지의 인생에 더욱 큰 의미를 새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231005_故 장근수 포항공대 명예교수 발전기금 전달식 및 명예의 전당 헌액식, 메모리얼 벤치 제막식_0075.jpg

 


인생을 통해 알려주신 삶의 철학

 

장혜미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고객의 목표를 잘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일과 동료들의 재능과 경력을 발전시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후학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두고 그들의 발전을 이끌기 위해 노력해 온 장근수 교수가 딸에게 물려준 정신적 유산이다. 미국 보스턴 Arnold & Porter 파트너 변호사로 자리하고 있는 장 변호사는 생명 과학, 의료기기, 진단, 유전 및 세포 치료, 그리고 유전체 분야에 20년 이상의 경험을 누적하며 클라이언트에게 깊은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변호사로서의 커리어도 놀랍지만, 그녀가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여러 실천은 삶에 깊이 내재한 이타적인 면을 가늠하게 한다.

“저는 주로 미국 내 아시아계 미국인과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Asian, Asian American, or Pacific Islander, 이하 AAPI)의 투표권 옹호, 매사추세츠 최초 AAPI 법률가 단체 결성을 비롯해 AAPI를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의 희생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보스턴 지역의 노숙인 가족을 위한 주거 제공과 보스턴 지역의 무주거 여성과 어린이를 지원하는 무료 법률 상담을 시행하고 있지요.”

차별과 장벽을 허물고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사회적 보장을 받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그녀는 특히 여성과 약자인 어린이들을 위한 법률적 보호를 적극 펼치고 있다. 이러한 행보에 장 변호사는 AAPI와 지역 사회의 변화에 동참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오히려 겸손함을 나타냈다.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사회와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치있고 뜻깊은 일이다. 장혜미 변호사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당신께서 누린 관용과 사랑, 그리고 친절함을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하셨다”고 말하며 “우리 가족의 ‘기부’는 김연준 이사장님의 ‘사랑의 실천 정신’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장근수 교수의 추도 1주기를 맞이하며 진행된 메모리얼 벤치 기부. 백남학술정보관을 오가는 수많은 한양 후배가 그 벤치에 앉아 쉬며, 시간을 함께할 것이다. 장근수 교수를 지탱해 온 삶의 자세를 그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는 가족들의 마음이 이번 기부를 더욱 값지고 아름답게 빛낸다.

“‘유머와 사랑’은 아버지 삶의 시금석이었습니다. 저는 한양 가족들과 후배들이 웃음을 잃지 않고,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이를 친절로 대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기부와 봉사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 연결될 수 있으며, 이것은 곧 우리 자신에게 유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양을 향한 고마움을 감추지 않았고 그 마음을 교포 사회와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표현했던 장근수 교수의 삶은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 우리 삶에서 멀리 있지 않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한양의 인재가 남다른 이유는 사랑을 실천하고 나눌 줄 아는 값진 유산이 있기 때문 아닐까.

이전글 박광선 대표(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코리아) 
다음글 장혜원 동문(연극영화학 17) 
리스트